〔2000년〕화가 이정연③‥절대자와의 만남
Artist RHEE JEONG YOEN‥‘Encounter’ the meeting with the Absolute Being:
[▲ Re-Genesis, 45×53㎝ Korea Lacquer Painting with Nature Materials on Hemp Cloth, 2000] 나는 이제 그가 초기에서부터 최근 작업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는 ‘만남’시리즈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의 작품의 변천과정을 눈여겨보면 그림 독법에 있어 두 가지의 길이 있음을 안다. 하나는 그의 그림 속에 주어진 이미지들을 하나씩 더듬어 그의 의식과 내면세계를 들여다보는 방법이며 또 다른 하나는 그가 ‘만남’이라고 명명하고 있는 작품들을 거꾸로 그 만남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되물어 가는 과정이다.
Now, I am very keenly interested in her series of painting, ‘Encounter’ which has been consistently represented from her early artwork to the recent works. Taking a view upon the process of transition of her works, we may fine the two different ways of reading method of her artworks. The one is to look into her inner world by fumbling the images described in her painting, while the other one is to question the meaning of meeting in connection with the tile of series ‘Encounter’.
이정연(RHEE JEONG YOEN)작가에게 있어 만남이란 아마도 어떤 절대적인 것과의 만남을 나는 연상했다. 물론 만남에는 여러 가지의 만남이 있을 수 있다 남자와 여자의 만남, 인간과 인간의 만남 등등. 그러나 그에게 있어 만남이란 흔하게 쓰여지고 부여되어지는 만남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그의 만남은 하나님과의 만남이 아닌가 여겨지는 것이다.
Probably, for herself, the meaning of meeting suggest a meeting with the Absolute Being in an associated imagination. Or, it may indicate a between the two different sexes or suggesting an ordinary meeting of man and man, etc. At any cases, the title of her works may not be a simple meaning of meeting itself. In this connection, I would rather imagine the meeting with Absolute Being, God.
[▲ 48×42㎝] 그는 작품전시의 제일 첫 부분에는 언제나 종교적인 것을 표징하는 그림이 들어가 있다. 마치 서약한 듯 암시하는 십자가 작품이 그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두말할 것이 없이 그는 예술도 늘 하나님과 같이 하겠다는 것을 맹세한 듯한 하나의 의식이 아닐까. 그런 그에게 그림이 사치스런 감정의 노예나 치기가 될 수는 없었는지도 모른다.
The first line of her works displayed at her individual exhibition is always represented by the paintings particularly symbolizing her religious faith. That to say, it was the Cross as if being demonstrating words of covenant. Needless to say, its implications denoting a religious ritual implying the pledge of an art always to be with God. For her, the artworks she has created are by no means a slave of a luxurious felling nor senselessness. Provided that the quality of genuineness including her emotional aspects can only be the most ideal style of art.
단지 진실함만이 그의 감정을 포함하는 가장 이상적인 형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그의 자품은 종종 진실된 태도를 보이는 그런 종교적 감정을 강하게 불러일으키는 작품 유형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예술이 혹은 그림이 종교화가 아닌 이상 너무 그 내면의 실체를 모두 드러내는 것은 덜 감동적이다. 이러한 관점이 제기되는 때에 이정연은 그의 회화세계에 중요한 변화 지점을 지나오고 있다.
In fact, her works are keeping the similar types of works which strongly evoke a religious sentiment. However, as far as her painting is no longer a religious one or so far as an art piece cannot be a religion itself, the openly exposed her inner entity would rather decreases the value of impression of her painting. When this sort of view premised. Artist Rhee, Jeong-Yoen is passing by a point of vital changes in her own art world.
구체적인 개인의 감정을 노출시키는 자세에서도 이제는 벗어났고 다소 반복적인 테크닉과 무규정적인 구성의 형태에서도 진일보한 절제된 구성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기호와 기하학적인 도형, 선 등이 함께 만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종교적인 세계를 감소시키거나 경시하는 것은 아니다.
She has now become free from her attitude of exposure of felling, and the evidence of her such an attitude in minimizing the composition of canvas by her advanced step from the frequent techniques and the irregular shapes of composition. Marks and geometric figures and lines, etc. are all together met among themselves. However, she would never decrease her religious world or ignore the faith.
[▲ 45.5×53㎝] 나는 그의 회화에 지나친 선의 사용을 경계해야 될 것이라고 생각 해 왔다. 최근 금호미술관에서 현대조형작가상 수상기념전으로 열린 그의 작품들은 우리가 그에게서 발견하고 있던 아쉬운 조형성의 문제가 극복된 성숙된 회화의 완성을 보게 되어 반가웠다.
I have been thinking of the point that she has to cautious about her over delineation of lines in her paintings. Her artworks recently exhibited at Keumho Gallery, marking her award of the formative artist prize have satisfied and pleased us that she has magnificently overcomer the formative problem that we have had painted out before.
이전에 이정연 작가의 작품에서 흔히 보게 되는 화려하고 현란한 색채에 그 자신이 더 이상 묻혀 있지 않았다. 산만하게 가지고 있던 형태와 긴장되지 않고 널려진 이미지들이 적절하게 균제 되어 작품으로 형상화되고 있었다. 특히 ‘만남’시리즈에서 보이는 단일한 색채와 기호, 삼베와 옻으로 마무리된 질감과의 만남은 그의 회화에 가치와 가능성을 새롭게 확인시켜주고 있다.
She would no longer be devoted in her painting trends of luxurious and gorgeous colors that we frequently noticed in her paintings. The once loosened shapes and the relaxed and scattered images in her former paintings have properly been regulated and materialized in her recent works. The single colors, marks in her ‘Encouter’ series and its meeting with the quality touch of hemp cloths with which the paintings were finished up would give us a confidence of finding the her artistic value and a renewed possibility.
나는 뉴욕에서의 그녀를 생각한다. 그녀가 이런 충실한 세계를 가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 그가 예술은 진실하게 자기자신을 담아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하나는 동양적인 의식을 버리지 않고 그 바탕 위에 종교적인 감정이 조형성과 만났기 때문이다.
The most acceptable reason for her to attain the satisfactory artistic world should lastly be thought again. It is because of her thoughts that she has to represent the sober reality in her artworks, a common truth of the art. The other reason is that she has kept on an Oriental consciousness on which she has arranged a meeting between her religious sentiment and the formativeness.
△글=김종근 미술평론가(Kim Jong-Keun/Art Critic)
## 이코노믹 리뷰 / Life&People / 문화 / 권동철 (미술 컬럼니스트) / 03.19.2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