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2000년〕화가 이정연③‥아이러니에 기초할 수밖에 없는 운명
Artist RHEE JEONG YOEN‥진리의 생명과 자기실현
[▲ Re-Genesis, 60.5×72.5㎝ Korea Lacquer Painting with Nature Materials on Hemp Cloth, 2000] 이러한 정서가 전래하는 전통적인 이미지에 해당하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실제로 작가의 작업은 무계획의 계획, 무기교의 기교, 무관심성, 소박미(주의), 자연성과 자연주의, 생명성, 생략적인 표현, 그리고 우연성 등 흔히 전통적인 정서를 지시하는 성분들과 일정하게 그 맥이 닿아있다. 이 가운데 자연성과 자연주의 그리고 생명성은 말할 것도 없이 생명을 잉태한 자궁으로서의 대지에 자신을 일치시키는 작가의 회화적 방법이 되고 있다. 이외의 정의들은 대부분 ‘스스로 그러한’ 자연(自然)의 본성을 형용한 것들이며 작가가 자신의 자연주의 회화를 실천하는, 반쯤은 체질화된 무의식의 요소가 되고 있다. 유래가 없는 옻칠이라는 재료 만해도 가급적 이러한 전래하는 정서와 전통적인 이미지를 실현하기 위한 작가의 의욕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Needless to say that the sentiment such as this case is the very traditional image of inheritance. Actually, the artwork of the artist has reached a certain extant of the elements which indicates what we call the traditional sentimental such as including a plan without international planning, skillfulness of non-skill, indifference, simplicity of aesthetic value, quality of nature and naturalism, matter of life, omitted and restricted expressions ect. Among them, the artist the magnificently adopted an artistic method to make correspondence her self with the earth as a life conceived womb, applicable to the quality of nature and naturalism and matter of life. Other terms expect the two are simply modified mostly the essence of nature as really as it is, and are the elements of unconsciousness which has already become a part of her physical constitution in the course of practicing naturalism artwork by herself. Especially, regarding lacquer painting, so rarely adopted in the art world as painting material, it indicates the reflection of he rintention and will possibly to realize representation of the traditional sentiment and image through her artwork.
[▲ 45.5×53㎝] 특히 우연성과 관련해서 ‘만남’이라는 일관된 화제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만남의 영어에 해당하는 ‘Encounter’라는 말은 원래 예기치 않은 ‘우연한 마주침’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이 말로서 작가는 우연한 것에 해당하는 허다한 것들, 이를테면 미처 그 의미가 고정되지 않은 비정형의 형상들, 작가에 의해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미지의 얼룩들, 무의식의 지층을 이룬 불가지(不可知)의 실체들 그리고 막연하게 그 실체의 한쪽 끝을 붙잡고 있는 정서의 편린들을 지시하고 있다. 그리고 회화의 장을 그 예기치 못한 것들과의 우연한 마주침이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희열과 향연의 장으로 탈바꿈 시키고 있다.
It is specially worth noticing the consistent subject matter in a way of(Encounter) with respect to incidence. The word, encounter in English is to meet unexpectedly. With this term, the artist has indicated a various matters and things including such as the irregular forms of imagery still remaining without any meaning the unknown spots which wait for the time to be generated by the artist, the identified objects in a form of unconscious layer and the portions of sentiment which vaguely grasp an edge of the object. Furthermore, the pictorial surface has been converted into a unexpectedly incidentally.
이외에도 만남이라는 말은 허다한 인연과 그 인연에 접 붙은 상처의 치유와 봉합이라는 삶의 의미를 뜻하기도 한다. 이로써 화면은 허다한 우연한 것들과의 만남 이 실현되는 장인 것이며 그 회화적 표현이 이러한 우연한 것들을 은폐하고 있는 대지로 상징된다.
Besides the above, the term encountering involves many other meanings including the healing of wounds created by cause and occasion. Thus, her surface of painting has become a premise to encounter with an innumerably many incidental objects and affairs, and her pictorial expression has symbolized the earth that conceals the all sorts of incidence.
[▲ 80×130㎝] 이렇듯이 우연한 것들, 어떤 고정되지 않은 의미를 은폐하고 있는 미지의 땅, 대, 자연에 대한 작가의 관념은 대지와 세계와의 이분법적인 구도를 전제로 예술의 정체를 추적한 하이데거를 떠 올리게 한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대지는 진리에 그리고 세계는 비진리에 해당한다. 대지가 진리인 것은 의미를 은폐하는 속성 탓이며, 세계가 비진리인 것은 대지가 은폐하고 있는 의미를 드러내는 비은폐의 성질 탓이다.
The notion of the artist about such cases as the matters of incidence, the unknown earth which conceals after the identity of arts on the premise of dichotomous structure of the earth and the world. According to Heidegger, the earth is applicable to truth, while the world is untruth. The interpretation of the earth to be truth is based on its attribution that conceals the objects and matters, while the worlds has an attribution of uncovering function by exposing the objects to the external world, once hidden by the earth.
마찬가지로 대지가 은폐하고 있는 의미가 진리인 것이며 이러한 진리는 그 의미를 노출시키는 세계의 간여 탓에 비진리로 전화한다. 결국 예술은 비진리적인 세계에 대지의 진리를 세우고 정립하는 일이며, 따라서 예술은 처음부터 아이러니에 기초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 자체 진리인 예술이 비진리로서만 자기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예술이 은폐하고 있는 진리의 생명을 가능한 해치지 않으면서 자기를 실현하는 일이다. 여전히 생명을 내재하거나 최소한 암시하는 일이다.
The same is applicable to earth that the meaning being concealed by the earth is truth, and the truth would become transfigured into untruth during the process of uncovering. After all, art is aimed to establish the truth of the earth within the world untrue, and therefore, arts was destined to be based on the irony from the truth. It is because arts, which is truth itself, can achieve its own realization only by untruth. The problem is that truth should realize itself to the extent not to hurt its life being concealed by itself. So far arts is concerned, it preserves a latent life at least imply it to the external world.
[▲ 60.5×72.5㎝] 이정연 작가의 화면은 이러한 하이데거식의 대지와 세계와의, 비결정의 형상과 양식화와의, 자연이 내재한 생명과 일정한 조작을 피할 수 없는 회화의 프로세스와의 한바탕 투쟁이 벌어지는 장에 다름 아니다. 그 동안의 과정을 생각해 보면 작가는 회화적 프로세스가 내재한 생명의 상실을 최소화하면서 이러한 세계에 자신의 대지를 세우는 일에 상당한 성과를 얻고 있다.
In this connection, we may find Rhee Jeong Yoen painting comparable to an arena in which she would be struggled with the earth and the world within the notion of Heidegger, the life latent in nature, and the painstaking process of artwork without any making up manipulation. Viewing over the processes she has had, the winter of critique is confident that she has considerably attained her result of artwork in setting up her own within the world through minimization of loss of the latent life by her pictorial process.
△글=고충환 미술평론가/Koh Choong Hwan(Art Critic)
## 이코노믹 리뷰 / Life&People / 문화 / 권동철 (미술 컬럼니스트) / 03.15.2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