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우선 결론부터 말해 보자. 화가 이정연의 관점대로 만일 자연과 인간사회를 처음 창조한 것이 기독교의 신이라고 한다면, 독실한 신도이기도 한 그녀는 자연과 인간사회, 좀 더 엄밀히 말해 현실세계의 자연 그 자체와 한민족이 일상적으로 애착을 보이는 조형물들을 특유의 관점으로 재생시켜 그것을 회화 작품으로서 지지체(支持体)의 평면상에 배치시켜 놓았고, 그러한 것들이 바로 이번 개인전의 주된 의미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넓은 전시회장, 그 중에서도 특히 일층 메인 스페이스에 들어가면,‘어, 이건 뭐지?’하며 누구라도 놀라 구경하고 싶게 만들 것이다. 회화 작품의 모티프로서, 극단적으로 변형되어진 (*원문에서는‘deformer되어진’이라고 되어 있음) 뼈나 대나무 등의 유기적 형태의 특이성 이상으로 시야를 압도하고 있는 것이, 철저하게 같은 색으로 구성된 배경이다.
장관이라 말해도 좋을 정도의 오커색(ochre)이나 갈색, 즉 조금 흑빛을 띤 다색(茶色)이 작품 전체를 덮고 있다. 아마‘갈색 삼림지(森林地)’라 표현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 갈색 삼림지는 패널을 붙인 캔버스에 옻나무 수액을 몇 번이고 덧입힌 것으로, 검붉은 광택이 자연스럽게 빛을 발하며 독특한 효과를 내고 있다. 그에 더해, 물감과 먹으로 형태를 구현하거나, 금이나 달걀껍질, 자개를 입히기도 한다. 이런 시도들이 이정연(RHEE JEONG YEON, 李貞演)작가의 독창적인 표현기법(*원문에서는‘métier’라고 되어 있음)을 대변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갈색 삼림지와 같은 색채를 기조로 하는 대작(大作)들이 끊임없이 펼쳐져 있는 모습이 무어라 형언할 수 없을 만큼의 장관을 이루고 있다. 사실 이러한 광경은 일본에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어떤 전시회든 색조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 전체적인 인상이 자칫 단조로워 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가 이정연의 경우는 결코 단조로워 보이지 않는다. 작품 하나하나가 지극히 중후하고 깊이가 있으며 그로 인해 전체적으로 긴 시간 시선을 붙잡는다.
또한 화면에 배치된 형태가 자유로우면서도 대담하다. 물론, 이와 비교하고 대조할 수 있는 이미지나 형상으로서 과거 전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라면 호리코시 치아키(堀越千秋)의 유채(油彩)를 떠올리게 한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호리코시도 의식했을 지 모를 클레멘테나 쿠키 등의 이탈리아의 뉴 페인팅 작품들의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들이 사용하는 색조가 다분히 지중해적이고, 지루하거나 비뚤어지지 않으며 명랑한 것에 비해, 화가 이정연의 작품(*원문에서는‘tableau’라고 되어 있음)은 한반도의 풍토와 민족성을 상기 시킨다. 특히 즐겨 구사하는 자개상감(*원문에서는‘조개 상감’이라고 되어 있음)은, 이조시대 왕가와 양반계층의 문화와 전통을 연상하게끔 만든다.
이정연(RHEE JEONG YEON, 李貞演,)작가의 현대 회화는, 파인아트(fine arts)와 전통공예와의 미묘한 거리감에 기반 한 긴장관계 위에 성립되어 있는 듯하다. 특히, 고도의 수법과 기법으로부터는 글로벌적인 의식이 엿보이면서도, 작품에 담긴 정서에는 철저하게 로컬리티를 내재화 시키고 있는 측면이야말로, 여성 화가만이 가질 수 있는 특유의 매력이 최대한 발휘된 부분일 것이다.
## 이코노믹 리뷰 / Life & People / 권동철 (미술 컬럼니스트) / 04.22.2017 ##
まず、結論から先に書こう。イ・ジョンヨン(李貞演)側に寄り添って考えると、もしも、自然と人間社会を初めに創造したのがキリスト教の神とすれば、敬虔な信徒である彼女は、その自然や人間社会、つまりもっと見に引きつけていうと、現実の自然そのものと朝鮮民族が日常的に愛着する造形物とを自分なりに再生し、それを絵画作品として支持体の平面上に配したのが、今回の大規模個展、ということになろうか。
広い会場の特に一階のメイン・スペースに入ると、「えっ、これはどういうこと」と吃驚したくなるだろう。作品の図のモティーフとして極端にデフォメルされた骨や竹などの有機形態の特異性以上に、視界へ立ち塞がるのが徹底した同系の地色なのである。
壮観ともいえるほどに、オーカーというか褐色、つまり、いくらか黒みを帯びた茶色に、ほとんどが覆われている。仮にズバリ、褐色森林地として形容しても、当たらずとも遠からずに違いない。
この褐色森林地、パネル張りキャンバスに、漆の樹液を塗り重ねたものらしい。赤黒い艶がナチュラルに発色し、独特な効果をもたらしているという。更にその上に、絵具や墨で形象したり、粉をかけたり、金や卵の殻、アワビ貝の真珠質の部分を貼ったりする。イ・ジョンヨンの独創的メティエ、といってもよいだろう。
褐色森林地ふうな色彩を基調とする大作がズラリと並ぶ。まことに、壮観。日本では、とても考えられない。色調に変化のある展示を心掛けないと、展覧会全体の見てくれが、あまりにも単調になるからだ。ところがイ・ジョンヨンの場合、決してそう単調にはならない。個々の作品がきわめて重厚で、奥行感に富み、トータル的に長い時間佇める。
画面に配される形態が、自由にして大胆。けれど比較的対照できるイメージの形象が、過去にまったくないわけでもない。偶然だろうが、例えば日本なら、堀越千秋の油彩をすぐに思い浮かべる。もっと遡ると、堀越も意識したかもしれないクレメンテやクッキといった、いわゆるイタリアのニュー・ペインティング作品をイメージさせる。かれらの色調が地中海的で、どこまでも屈託がなく明朗なのに対し、イ・ジョンヨンのタブローは、朝鮮半島の風土や民族性を想起させる。とりわけ多用する貝の象嵌は、李王朝や両班階級の文化の伝統を連想させられてならない。
イ・ジョンヨンの現代絵画は、限りなくファイン・アートと伝統工芸との付かず離れずの緊張関係で成り立っているように思われる。高度な方法意識がグローバルでも、心情的には、どこまでもローカリティを内在させているところに、この女性画家ならではの最大の魅力があるのではなかろうか。
△てんじ=‘新創世記(Re-Genesis)’展-上野の森美術館(우에노 모리 미술관), 2014年 1月30日~2月5日
△‘ギャラリー(GALLERY)’ 2014年 3月號
△ぶん=[論評の 眼]/ワシオ・トシヒコ(Toshihiko Washio, 와시오 토시히코)美術評論家(미술평론가)
## Economic Review / Life & People / Dong-chul Kwon (Art Columnist) / 04.22.2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