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화가 이정연③‥정신·종교적 수행과정의 결합
Rhee Jeong Yoen‥어눌, 무작위, 원시적 부호, 도상적이미지의 맥락
[▲ Encounter, 112×162㎝, Korea Lacquer Painting with Nature Materials on Hemp Cloth,1999] Rhee creates symbols out of lacquer, charcoal, hemp and other natural materials which consistently recur in her work and act as words that form her sentences. Her pictures create text in the form of landscapes, bamboo, mountains, stones, cliffs or even visual representations of wind or the sound of water. They are symbols summoned from the earth? surface and which float in space like shipwrecks that have come ashore. We are reminded of text etched in the ground using fragments of bone, wood chips or stones, like an ancient script or some primitive body movement, or maybe just a piece of paper with random scribbles.
황갈색의 삼베, 옻칠, 목탄, 천연소재와 함께 반복해서 등장하는 기호/도상들은 작가만의 문장을 만드는 단어구실을 한다. 이 기호들을 조합해 만든 텍스트가 그림이 된다. 이 그림은 마치 산수화를 연상시킨다. 대나무가 서있는 풍경, 바람이 불고 물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산과 돌, 수석과 절벽이 놓여진 풍경이 보인다. 지표에서 하나씩 불려나와 허공을 뷰유하는 도상들은 마치 대지에 드러누운 부드러운 잔해들 같다. 대지에 뼈나 나무 조각, 돌멩이를 하나씩 올려놓은 것을 부감하는 것도 같고 땅바닥에 막대기로 끄적거린 서체나 낙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 162×130㎝] The symbols hearken back to those used in the ancient art of divination, like a magic formula. However, they are, in fact, the recurring symbols of her spiritual world, the world she is continually moving toward. They represent the encoded sounds coming from deep within, the crystallization of everything that comes from nature through her body: the remnants created from intense self-training.
그것은 원초적인 몸짓이나 아득한 원시의 문자를 떠올려준다. 마치 주문이나 부적을 쓰듯이, 점술에 동원된 기호들처럼 보인다. 그런가하면 붓글씨를 쓰거나 필획 연습을 해놓은 종이의 표면을 보는 듯도 하다.(작가는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 형상들은 작가에게 있어 자신의 정신세계를 암시하는 원형들, 자신이 지향하는 영성적 세계의 은유, 자기의 내부에서 들려오는 소리의 부호화, 자연계에서 들려오는,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자기 몸으로 흡입해 요체화한 결정, 자기 수련의 과정에서 반복되는 수행의 흔적들이기도 하다.
Rhee’s work is more about the process of training through the act of painting than about the painting itself. It is in this sense that they are religious. The picture plane is a space for her spirituality and faith, a space where everything is realized and all becomes one. Rhee breathes in this space; she acts, takes time to immerse herself, and does what she wants to do.
이정연 작가의 그림은 그림 그 자체보다는 그리는 행위와 정신적, 종교적 수행의 과정이 행복하게 결합된 성격이 강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다분히 영적이기도 하다. 화면은 자신의 영성과 신앙, 수행과정의 체득이란 모든 것들을 하나로 묶어서 펼쳐 보이는 공간이다. 작가는 그 공간에서 숨을 쉬고 행위를 하고 몰입의 시간을 갖기도 하고 혹은 자신이 지향하는 삶의 연마로서의 시간을 누적시키는 장이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자신을 끊임없이 비워나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 194×291㎝] However, it is also a space for endlessly emptying the self, where she can take in all the sound from outside and, by opening her body, allow herself to become the instruments, the bamboo, the rocks, mountains or water. Rhee is in essence a reincarnation of the wise men of the East, once again cultivating the sacred plants: plums, orchids, chrysanthemums and bamboo. She paints mountains and water through experience, transcending the material world. In fact, we sense that her experience with the material world has left her empty so that she attempts to return to her self with the heart of a child. Such gestures become the basis of her paintings. The random and sometimes rough-hewn drawings as well as the appearance of primitive signs and shape become comprehensible in this context.
자기 온몸을 열어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온통 받아내는 것, 자신이 악기가 되고 속 빈 대나무가 되고 바위나 물, 산과 돌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동양의 현자들이 사군자를 치고 산수를 그린 저간의 이유를 이 작가는 현재 시점에서 색다른 재료체험 아래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비워져야 세계를 만나기에 늘상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되돌리려는 제스처가 그림행위의 근간이 되고 있다. 다소 어눌하고 무작위적인 그림과 원시적인 부호나 도상적 이미지의 등장은 바로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 이정연(Artist Rhee Jeong Yoen)작가] Bamboo is a popular theme that appears frequently in Rhee’s paintings. Rhee claims that she is drawn to the firmness of bamboo and the way the hollow joints stand upright without bending. Bamboo inspires her and makes her think about how we as human beings should live. Like bamboo we are interconnected; we should share what is in our hearts to create a stronger society. Hence, she often creates shapes such as human bodies and musical instruments that overlap onto bamboo trunks. Once again she is creating a painting in the traditional sense, one with all the formality and dignity of the Confucian literati.
특히 대나무는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형상이다. 이정연 작가에 의하면 대나무는 가운데가 텅 비어있으면서도 꺽이지 않고 꼿꼿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 좋았다고 한다. 그리고 인간도 그런 대나무의 몸과 같이 텅 빈 마음을 서로 연결시키면서 하나의 나무를 완성시키듯이 그렇게 조화롭게 사는 것이 바로 세상사는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번진 것이다. 그래서 빈 대나무의 몸체에 인간의 형상을 겹쳐놓거나 악기 등의 이미지를 올려놓은 것이다. 아울러 가슴 속의 대나무를 일획에 의해 쳐나가는 전통적인 문인화의 한 순간을 만나고 있다.
It is this dignity and formality accomplished through vast empty space that may be the most important element in Rhee’s paintings. According to her, the strength and movement of refinement and beauty are best experienced by the love and warmth we feel for others in our everyday lives. The empty space represents the calm moments we experience as we meditate and relax spiritually.
기운생동과 문기, 그리고 모종의 격은 여전히 이 작가의 그림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니까 이 작가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운생동과 여백일 것이다. 작가에 의하면 우리의 주변 생활에서 느껴지는 만남의 의미를 생명력과 사랑 그리고 이웃들에서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체온의 이미지를 기운생동으로 표현하려 했으며 여백은 자연과 인간이 여유롭게 어울리고 인간의 사랑을 서로 주고받으며 자신이 잊혀져 가는 소중한 영혼의 휴식과 힘을 얻을 수 있는 여유로움의 이미지를 드러내는데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글=박영택/미술평론가(Park Young-Taik/Art Critic)
## 이코노믹 리뷰 / Life&People / 문화 / 권동철 (미술 컬럼니스트) / 03.10.2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