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랑우회]화가 이정연①‥깊은 감동과 한없는 존경심의 가르침
멤버들은 미술전공자 13명 그리고 운미여사님 황 교수님, 이정연 작가 등 한 22명
[▲ 올해 3월25일 충남 당진시 합덕읍 ‘신리성지 순교미술관’을 배경으로 일랑 선생님과 사모님, 랑우 식구들과 기념 촬영했다. 이 미술관은 우리나라 최초 유일한 순교미술관이다.이종상 선생님의 4년간 순교자적인 영성과 열정 그리고 기도와 믿음으로 봉헌한 프랑스인 다블뤼 주교 및 성인영정화 5점, 다블뤼 주교의 생애를 중심으로 기록한 1000호 되는 순교기록화 13점, 총18점이 우리나라 전통기법인 장지기법을 통해 완성되었다. 인근에 우리나라 최초 김대건신부님의 생가 솔뫼성지 및 추사 김정희 고택도 있다. (좌로부터)조경호, 손연칠, 이정연, 일랑 선생님과 성순득 사모님, 서용, 김선두, 이종민. ]내 그림이 중간에 공백상태같이 비어있는 시절에 대해 짚고 넘어가려 한다. 대학교 2학년 초 어머니와 외할머니를 여의고 졸업 후 연이어 친할머니까지 잃고 난 후 인생에 대한 허무함과 함께 믿고 의지했던 주위사람들의 변화된 모습에 깊은 상처를 받은 후 여러 가지 환경적인 어려움과 건강의 악화로 삶은 힘들어지고 지쳐만 갔다.
그동안 어려움 없이 자랐던 나는 남을 미워하는 대신 끊임없이 내 자신을 정죄하고 나에게 모든 억울함과 분노를 돌리고 자책했다. 클래식 기타를 배울 때였는데 선생님이 ‘오래 연습한 사람도 속 소리를 내기 힘든데 어떻게 초보가 그 소리를 낼 수 있느냐’고 칭찬을 해 신이 나서 밤새 기타를 연습하다 손목을 시작으로 온몸의 마디마디가 붓고 고통스러워졌다.
당시 유명한 서울대병원 정형외과 선생님이 류마티스성 관절염이라며 평생 ‘밥상도 들지 말라’고 하는 엄청난 말씀을 하셔서 앞이 캄캄해지며 좌절했다. 기타 줄을 사러갔더니 주인이 ‘젊으셨을 때 꽤 미인이었겠다’라고 했다. 당시 꽃다운 27세인데 40대로 보였나보다.
마음치료차 돈 보스코에 가서 마인드컨트롤 프로그램을 듣던 중이었다. 국선도 설립자이신 청산거사님이 오셔서 국선도에 관한 행공과 강의를 듣게 되었다. 당시 요가수행을 하고 있었는데 너무 허기가 져 있을 때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소리를 듣고 종로 2가에 위치한 백궁도장을 찾아 정말 열심히 7년간 빠지는 일 없이 어느 때는 2~3번은 물론 하루 종일 집중하여 행공하였다.
그만큼 그 체험과정이 재미있고 신비로웠다. 그리고 기운생동이 동양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기를 돌리는 작업을 하는 과정이 단전호흡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는 깊이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동방연서회에서 여초선생님께 전서를 시작으로 붓글씨와 함께 일랑(一浪) 이종상(李鍾祥)교수님께 사군자 기초부터 배우며 동시에 임창순 선생님께는 논어 장자 등 동양철학을 배우게 되었다. 한문에 자신이 없던 시절이라 내용을 중심으로 듣게 되었다.
이종상 선생님께서 서울대학교 강사를 하시다 교수로 임명이 되셨을 때였다. 국가에서 교수들이 외부 강의를 할 수 없다는 규제법이 생겼다. 배우던 분들이 그 사실에 안타까워 랑우회(浪友會)라고 명하여 석관동에 100평 화실을 얻고 선생님께 간청하여 배우게 되었다.
교수님은 일체 사례비를 받지 않으시면서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어가며 가르쳐주셨다. 매달 한번 마지막 토요일에 강의가 시작되었는데 한번 시작하면 밤을 새우다시피 열강을 하실 때 마음깊이 감동과 한없는 존경심이 들었다.
멤버들은 미술전공자 13명 그리고 환갑이 넘으신 운미여사님으로부터 남자 노교수이신 황 교수님, 의사선생님, 송하 여사님, 아원 여사님, 박병준씨 등과 남녀대학생들 그리고 장산스님까지 한 22명 정도였다.
## 이코노믹 리뷰 / Life&People / 문화 / 권동철 (미술 컬럼니스트) / 06.05.2017 ##